Ooh La La!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허브 리츠(Herb Ritts)가 촬영한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1990.

30년 전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범상치 않은 사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무서운 아이였다. <데이즈드>는 짓궂음으로 가득 찬 그에게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 테디 베어와 마돈나에 대해 물어보았다.

30년 이상 장 폴 고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독창적인 디자이너였다. 코드피스(Codpiece), 맨즈 스커트, 겉옷으로 연출하는 언더웨어부터 캣워크의 중성적인 여성 그리고 성별의 경계와 전형적인 여성성의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초월하는 것까지. 고티에는 사회의 관습에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도전하였고, 이제 그는 사회의 질서가 되고 있다. 그 말고 누가 페티시, 결박, 고무 그리고 PVC를 오트 쿠튀르 의상에 입히겠는가? 그는 하이패션을 스트리트로, 스트리트 스타일을 캣워크로 옮겨놓았으며, 전통적인 것과 급진적인 것이 이루어내는 매력적인 융합을 선보였다. 그는 2가지 아이템, 브레톤 세일러 톱 그리고 뾰족한 콘 브라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았고 현재까지 그것들은 고티에를 정의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유명한 금발 앞머리는 이제 약간 회색빛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의 파리지엥 억양은 유로트래시(Eurotrash)의 것과 같다.
울랄라!


지난해 6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축하를 하기보다는 침대에서 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정말로 그랬나?
생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생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상징적일 뿐. 생일날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 내가 60세가 된다고 해서 뭔가가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대한 이런 생각은 할머니가 준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그녀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굉장히 좋은 일이고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춤을 출 때 관절염을 떠올리게 되면, 이런 기분이다. ‘으, 오!’ <댄싱 위드 더 스타>를 좋아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우아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고 생각하나?
뭘 원하든 먹을 수 있었고 절대로 살이 찌지 않았다. 그런데 서른이 되자, 자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혼자서 많은 양의 스파게티를 먹는 건 더 이상 무리였다. 그리고 40대와 50대가 되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내 위장이 요구하는 공허함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고 느껴지곤 한다. 

패션 서커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극장에 가는 걸 좋아하고 TV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난 TV와 함께 태어난 세대이다. 할머니는 수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에만 TV를 보게 해주었다. 일요일에는 작은 차를 몰고 파리 외곽으로 나가서 정원이나 나무를 보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게 관심사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 TV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채널이 많아서 이것저것 모든 걸 보게 된다. 과거의 흑백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프랑스 영화든 미국 영화든, 베티 데이비스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극장에 가는 건 다른 일이다. 극장의 분위기와 커다란 스크린 그리고 팝콘처럼 전통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파리에서 사는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다고 말해야만 한다. 최소한 매주 8개에서 10개의 새 영화가 개봉을 하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걸 볼 수는 없다. 특히 쇼 시즌에는.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간다.

항상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를 거부하고 도발적인 디자인을 택해왔다. 그러한 창작 과정이 어떻게 진화했고,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화했는가?
항상 일을 하고 있지만, 그건 일이 아니다. 내 열정이다. 항상 내 주위의 모든 것을 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상대방의 스터드 브레이슬릿을 볼 수 있고, 머리와 부츠를 보고 그 뒤 선반의 책을 본다. 알다시피 모든 것이 학습 과정의 일부이다. 그리고 또 런던에 가면 그곳의 영향을 항상 받는다. 나는 거기에서 반항을 본다. 로큰롤 에지와 함께 영국만의 독특한 화려함의 방식을 본다. 이건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신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들,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 당신이 ‘왜들 그러는 건데?’ 하고 묻는 것. 나는 항상 질문을 던지고 내가 믿는 것에 대해 시험한다. 뭐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무엇이 우아한 것인지. 심지어 장 파투와 함께 일했을 때도, 쿠튀르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베이지와 골드는 굉장히 시크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우, 역겨워. 블랙이 더 좋은데!’ 그리고 승마 부츠를 신고 일하러 가곤 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말은 어디에 있어요?” 하고 재수 없게(!) 물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차이를 사랑하고 나만의 결론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니까.

확실히 ‘차이점을 경배하라(Viva La Difference)’를 믿는다. 캣워크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델을 통해 이런 점을 볼 수 있다. 왜 그것이 중요한가?
모델을 캐스팅할 때 나는 곡선을 가진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 소수 민족의 여성, 중성적인 여성 등 다양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다. 내 쇼에서 특정한 이미지의 여성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정말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그녀들이 연출하는 각각의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마돈나가 MDNA 투어에서 입은 코르셋의 스케치, 2012. 마돈나가 블론드 앰비션 월드투어(Blond Ambition World Tour)에서 착용한 보디 코르셋, 1990. 2000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마린풍 드레스.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열렸던 <장 폴 고티에 패션전>.

지난 시간 동안 양성성의 대사라는 명성을 얻어왔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에 도전하려는 열정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여러 가지에서 온 것 같다. 난 학생 시절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축구를 하지 않았다.  좀 여성스러웠고 항상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점점 남자아이들보다 여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다. 프랑스에는 여자들에게 하는 끔직한 표현이 있다. ‘Sois Belle Et Tais-toi(아름다워지고 조용히 해라).’ 나는 여기에 부당함을 깨달으면서 거의 페미니스트가 됐다. 여성은 지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돈과 인맥 같은 남성성의 속성을 가진 전형적인 남자들. 나는 그들이 굉장히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유니섹스 패션을 만들기로 했고, 이는 에드위지 벨모어(Edwige Belmore)처럼 내게 영웅인 사람들에게 매료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펑크의 여왕’인 그녀는 머리를 탈색하고 타투를 한 쿠튀르 펑크 스타일의 표본이다. 제임스 본드에서 영감을 받은 1979 F/W 컬렉션에서 나는 그녀에게 시드 비셔스 스타일로 ‘My Way’를 부르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웃웨어 브라와 맨 재킷 아이디어의 영감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두 아이템은 처음에는 브라를 태우고 그다음 다시 입기 시작한 여성들의 포스트 자유주의 같다. 다만 나는 좀 더 반항적이고 독특한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유혹의 도구 같은! 

브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마돈나를 위한 콘 디자인 전에, 첫 테디 베어 나나를 만들었다. 이유가 뭐였나? 패션과 음악의 도상학에 이렇게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나는 옷을 입힐 수 있는 인형을 원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인형, 안 돼! 그건 여자아이들을 위한 거잖니.” 그래서 대신에 나의 첫 트랜스베스타이트 테디 베어를 만들었다. 패션과 음악의 도상학에 중요한 작품? 그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다. 내가 디자인한 그 어떤 것도 패션 성명서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1950년대 광고 속 핀업 걸의 브라들은 조금 뾰족하고 섹시하다. 콘 브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자들이 실제 입는 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었다.

당신 인생과 커리어의 대부분은 여성들과 함께 형성했으며, 당신에게는 많은 뮤즈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마돈나! 어떻게 관계가 시작됐고,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발전되었나?
마돈나를 처음 본건 ‘Holiday’ 뮤직비디오에서였다. 그녀가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미국인이었다면 그렇게 입을 수 없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도 굉장히(!) 유럽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사실 그녀는 미국 태생이다). 당시 그녀의 룩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의 믹스였고, 굉장한 언더그라운드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만의 룩을 만들어내고 스타일리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이후에 다른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블랙과 골드 코르셋을 입고 있었다. 그건 내 디자인 같았지만, 사실 할리우드의 프레더릭 작품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나에게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지?’ 그래서 나중에 어느 파티에서 그녀에게 내가 그녀를 생각하며 스케치한 것들을 보여줬고, 1년 후 쇼가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가 말했다. “마돈나에게서 전화 왔었는데, 전화해달래요.” 나는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응, 알았어.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쇼가 끝나고 “마돈나 이야기 진짜야?”라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고,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다. 그래서 완벽했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콜라보레이션 중 하나다.

그녀를 만날 때 보통 무엇을 하나?
이제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다.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보통 뭘 할지는 그녀가 정한다. 함께 저녁을 먹고, 그녀는 절대로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대, 절대, 절대로. 하지만 가십, 예스! 뒷담화, 예스! 섹시한 것, 예스! 

마돈나를 제외하더라도, 확실히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앨범을 종종 산다. 하지만 그걸 완전히 듣는 것과 좋아하는 건 나에게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 뮤직비디오처럼 한 곡 또는 두 곡을 듣는다. 언더그라운드적인 걸 듣고 찾는 걸 좋아하고, 음악에 의해 영향을 받으려고 하고, 놀라운 우연으로 뭔가를 발견하려고 한다. 나는 쇼를 기획할 때,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99% 정도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나는 나의 컬렉션과 어울리거나 대조적인 방식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나 반응을 유발하기를 원한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에게 보내는 헌사’로 이름 붙은 1998 S/S 컬렉션.

2013 S/S 컬렉션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아이콘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존경하는 빅 스타들은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이는 그들과 나의 연계성을 반영한다. 또 나는 보위나 그레이스 존스 같은 스타들을 좋아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여성스럽고 충격적인 룩으로 활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비주얼적으로 소녀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까.

영화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상징적인 의상을 만들었다. 
나는 영화를 통해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전시에서 오래된 TV를 통해 1945년의 흑백 영화 ( 로 알려진)를 보여준다. 자신의 뮤즈이자 친한 친구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지는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죽는데, 그녀라고 생각하는 마네킹(그는 약간 머리가 이상해졌다!)을 들고 발코니에서 뛰어내린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운다. 내 인생의 소명을 알려준 영화다. 이 영화는 내가 옷을 만들고, 피팅을 하고, 뮤즈를 통해 패션을 완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잘 그린 영화다.

그 전에는 뭘 하고 싶었나?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Les Folies Bergere를 위해 의상을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를 보고 내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이 영화에 출연했던, 지금은 91세가 된 여배우를 만났는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뮤즈를 갖고 싶게 되고 디자이너가 된 건 당신의 영향이 컸다. 당신을 사랑했다!” 그녀는 당시 감독이 쿠튀르를 지지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영화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한 디자이너 마르셀 로샤스(!)의 친구였다.

브레톤 스트라이프 또는 세일러 톱은 당신의 컬렉션에서 시그너처가 되었다. 이러한 내추럴 스타일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스트라이프에 집착한다! 어렸을 때 스트라이프 톱을 입었는데, 당시 패션에 플리 마켓이 있었고, 그런 톱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렌치 네이비 톱을 봤고 그래픽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나의 컬렉션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레인코트를 디자인할  때부터다. 그때 나는 스트라이프로 코트를 스케치했었다. 그리고 그 후 조금씩 조금씩 더 다양하게 사용하게 됐다.

자신의 전체적인 디자인 어휘를 설명해달라. 미래에도 계속해서 도발적일 것인가?
나의 디자인은 나만의 판타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깨닫는지에 대한 나의 느낌에 더욱 가깝다. 처음에는 이브 생 로랑 같은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비평을 읽고는 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충격적’이라고 묘사됐는지에 대해 상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브 생 로랑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같은 영혼을 갖고 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느끼는 것을 좋아하고, 그 무엇보다도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파울로 로베르시(Paulo Roversi)가 포착한 장 폴 고티에의 드레스(1985 A/W의 바르베스 컬렉션)를 입은 모델 타넬 베드로시안츠(Tanel Bedrossiantz)의 모습.

TEXT. 케이트 로슨 (KATE LAW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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